1. 시대적 배경
신대륙 발견 이후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던 스페인이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북유럽과 남유럽 사이의 신교와 가톨릭 대립으로 야기된 30년 전쟁(Thirty Years' War, 1618~1648)의 결과로 다양한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고, 사회·문화적으로는 네덜란드가 중심 국가로 부상하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 지배하에 있다가 17세기 초에 독립하였으며,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유럽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국력이 신장하 영국과 경쟁을 벌일 정도로 경제 강국이 되었으며, 세계의 패션 유행을 선도하게 되었다.
17세기 전반 네덜란드의 패션은 르네상스 시기의 복식과 상반되는 서민 복식 중심으로 실용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네덜란드의 정치 체제가 공화 연방제였기 때문에 복식 문화의 주체가 귀족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었으며, 종교개혁 이후 로마 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파인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어 검소한 생활을 미덕으로 삼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네덜란드인의 의복은 시민 풍이었으며, 합리성과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발달했다. 네덜란드가 한창 번영하고 있을 때 영국에서도 해상권을 장악해 나갔으며, 직물 산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17세기 중엽에는 프랑스가 유럽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는데 영국과 함께 국제적 상업 무대도 장악하게 된다. 특히 절대왕권 강화는 당시 복식문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1643~1715)는 당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예술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외형적인 치장 등 미화에 치중했다. 가구 등의 생활 공간은 물론이고 의복과 장신구까지 극도로 웅장하게 장식하는데, 이러한 취향은 바로크(baroque) 양식의 본격적인 발달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크'란 '일그러진 진주'라는 의미로, 스페인어 바루카(barruca)에서 유래했다. 이는 그리스·로마의 고전적인 건축양식을 따르던 사람들이 고전 건축의 엄격한 규칙을 깨뜨리는 바로크 양식의 부조화와 황당무계함 등을 꼬집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따라서 엄격하고 품위 있는 대칭의 균형 감각을 지닌 르네상스 양식에 비해 바로크 양식은 율동감 있고 열정적이며 비대칭의 미묘한 감각을 보여준다.
2. 복식
1) 개요
17세기 전반은 르네상스 스타일이 네덜란드의 시민 복식으로 바뀌는 시기였고, 바로크식 복식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즉위한 17세기 중엽부터 유행하였다. 이렇게 17세기 복식은 전기와 중기 이후로 나눌 수 있으며, 두 시기는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남성 복식은 1660년과 1670년을 전후하여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전기는 네덜란드의 시민복을 중심으로 한 실용적이고 간소한 복식인 반면, 중기 이후는 프랑스 궁정복 위주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복식이 유행하였다. 중기 이후 프랑스는 화려한 직물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옷이 너무 화려해져서 여러 차례 복식 금지령이 내려 고급 직물과 레이스, 보석의 사용을 억제했다. 복식 금지령으로 레이스와 보석 대신 루프 장식이 유행하다가 레이스 직조기가 발명된 이후에는 다시 레이스 장식이 유행했다.
2) 여자 복식
17세기 초의 여성 복식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스커트를 부풀리던 버팀대인 후프가 축소되어 점차 사라지고 이와 더불어 소매의 부풀림도 줄어들었다. 상체에 딱딱한 패드를 넣어서 형태를 만들었고, 색과 장식에서는 하얀색이나 검은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간소한 장식으로 변화해 갔다. 이는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반영 네덜란드의 시민 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러한 경향은 17세기 전반에 지배적이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즉위한 중기 이후에는 다시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를 부풀리는 거대한 실루엣이 유행하게 된다.
(1) 로브
17세기 초기에는 16세기 말의 로브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1630년경에 이르면서 스커트의 후프가 사라지고 허리선이 높아져 자연스러운 실루엣으로 변화했다. 원피스 형태와 투피스 형태가 공존했고, 가슴을 U라인이나 라운드 넥라인으로 드러내는 데콜테(decollete)와 짧은 소매를 선호했다.
중기가 서는 상의의 허리선이 내려가고 리본과 레이스로 과도하게 장식하여 남성복과 같이 외관이 화려해졌다. 러프 칼라가 사라지고 다양한 칼라가 생겼다.
푸기에는 허리선이 더 내려가 예각으로 처리되고 로브의 오버 스커트 자락을 엉덩이 위로 끌어올려 버슬 스타일(bustle style)이 되었다. 소매는 팔꿈치 길이로 짧아져서 소매 단에 앙가장트(engageantes)라는 여러 겹의 레이스 장식이 더해졌다.
(2) 외투
17세기 여성들은 로브 위에 긴 기장의 외투 형식인 오버드레스(over dress)를 앞을 여미지 않고 착용했다. 오버 드레스는 소매가 없이 윙만 달린 것, 긴 행잉 슬리브(hanging sleeve)가 달린 것, 짧은 소매인 것 등이 있었다. 가운 이외에 소매까지 덮는 만틸라(mantilla)라는 풍성한 실루엣의 케이프도 있었는데, 기장이 짧고 원형으로 재단되었으며 후드가 달린 것도 있었다.
3) 남자 복식
16세기에 패드, 퍼프, 슬래시를 사용했던 남자 복식은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검소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의 시민 복을 중심으로 한 복식으로 바뀌었다. 17세기 초에는 패드가 없어지고 슬래시와 퍼프만 남게 되어 상의가 간편해지고 하의가 넉넉해졌는데 이 둘은 17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남성 복식이었다. 1650년경 프랑스에서 루이 14세가 즉위하면서 거대한 실루엣과 화려한 장식이 있는 바로크 양식의 복식이 유행하게 된다.
(1) 더블릿, 푸르푸앵
17세기 전반부 : 네덜란드 시민복의 영향으로 패드와 퍼프, 슬래시가 작아져 간편하게 변했다. 칼라는 반원형의 레이스를 머리 뒤로 세운 것이었다가 레이스가 어깨에 내려앉은 폴링 칼라(falling collar)로 바뀌었고 어깨에는 패드가 사라져 납작한 형태가 되었다. 앞 중심에는 장식적, 기능적인 역할의 단추가 촘촘히 달렸다.
17세기 중반 : 푸르푸앵의 기장이 짧아져서 볼레로(bolero) 스타일이 되었는데 여기에 루프 장식이 달렸고 소매가 짧아져서 반소매 길이가 되었다. 소매에는 긴 슬래시가 있어 그 안에 착용한 셔츠가 보였고 칼라는 레이스로 된 폴링 밴드 칼라(falling band collar)를 작게 세운 스탠드 칼라(stand collar)에 덧붙였다.
17세기 후반 : 기장이 더 짧아지면서 소매 달린 조끼 형태로 변화했다. 코트(coat)인 쥐스토코르(justaucorps)로 대체되어 사라진다.
(2) 코트, 쥐스토코르
쥐스토코르는 신체에 잘 맞는다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상체 부분이 신체에 꼭 맞고 허리 아래로는 점점 폭이 넓어지는 코트를 가리킨다. 1660~1670년경에 푸르푸앵이 사라지면서 코트로 대체되어 바지 위에 입는 상의의 성격으로 바뀌었다.
쥐스토코르는 상류층에 보급되어 자수나 레이스, 단추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앞 중심에는 단추가 촘촘히 달렸고, 금사와 은사를 넣어 만든 끈이 단춧구멍을 따라 짧은 수평선으로 장식되었는데 이 장식은 상류층의 부와 지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소매는 뒤로 젖힌 폭이 넓은 턴 백 커프스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쥐스토코르와 함께 앞에서 리본을 매는 형식의 크라바트(cravate)가 등장하는데, 남자의 주요 목장식이었으며, 후대에 넥타이로 정착하게 된다.
1670년 초에는 수수한 모직물을 소재로 만들었으나, 궁정 복으로 바뀌면서 실크와 벨벳 같은 고급 직물을 사용하고 금사, 은사로 된 장식이 생기면서 화려한 의상이 되었다.
18세기에도 착용하였으며 19~20세기에 이르기까지 남자 복식의 시민적 성격을 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남성복의 기초가 되었다.
(3) 베스트
남성 양복 조끼의 초기 형태이며 쥐스토코르와 함께 17세기 중반에 등장함다. 실내에서 주로 착용했으며, 외출 시에는 쥐스토코르를 그 위에 착용했다. 초기에는 현대의 조끼와 달리 기장이 길고 소매가 있었으며 앞 중심에는 단추가 촘촘히 달려있었다. 쥐스토코르는 앞을 여미지 않고 착용했기 때문에 베스트가 잘 보였고, 따라서 베스트의 앞부분은 고급 직물을 사용하고 화려하게 장식했다. 반면 안으로 감춰지는 뒷부분은 소박한 직물로 만들었다. 후기에는 기장이 짧아지고 소매가 없어지면서 오늘날의 신사복 조끼로 정착하게 되었다.
(4) 외투
쥐스토코르 위에 외투로 맨틀(mantle)이나 케이프(cape)를 둘렀다. 귀족들은 화려한 실크를 안감으로 사용하고 가장자리는 털(fur)로 장식한 호화로운 것을 입었다.
(5) 호즈, 쇼즈
16세기에는 패드와 슬래시를 넣어 부풀린 실루엣이었으나, 17세기에 들어서 실용성, 검소함을 추구하는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패드와 슬래시가 줄어들고 넉넉한 반바지 형태를 이루게 되고 명칭도 브리치스(breeches)로 변경된다. 17세기 초의 쇼즈는 꼭 맞는 스타일과 풍성한 스타일 등 다양한 형태가 유행했고, 기장은 무릎 아래까지이고 그 끝을 리본으로 맸다. 중반부터는 색상과 장식이 화려해졌다. 코트가 남성 상의로 정착된 이후에는 다리에 잘 맞는 브리치스로 단일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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