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류학 - 현대패션과 서양복식문화사

근대 - (1) 엠파이어 스타일 시대 복식(1789~1820)

by 루아맘amber 2023. 2. 19.

1. 시대적 배경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 19세기 초반까지의 사회적 특징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치혁명으로 인해 정치적 변화가 크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급격한 정치적 변화로 혁명시대(1789~1795), 총재정부시대(1795~1799), 통령정부시대와 제 1 제정시대(1799~1815)로 시대 구분을 할 수 있다.

 혁명시대는 절대왕정이 붕괴되고 지방 행정가들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제일 상위의 신분은 성직자로 전체 인구의 1퍼센트도 안 되는 극소수였으나 넓은 토지, 높은 수입으로 파리나 베르사유에서 부유한 생활을 했다. 제2계급인 귀족도 전체 토지의 1/4 정도를 소유하고, 특권과 부를 누렸다. 이에 반해 제일 아래 계급인 평민 계급은 인구의 95퍼센트를 차지하고 대부분이 농민이었으며,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특권은 꿈꿀 수도 없는 처지였다. 따라서 이들 계급이 이때 등장한 볼테르와 같은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혁명을 일으키게 되고 사회는 급변하게 된다.

 혁명을 이끌었던 자코뱅당 총수가 물러나고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를 좌우하게 되는데, 이 결과 5명의 총재가 통치하는 총재정부시대가 시작되었다. 자유주의, 경제 정치로 사회적 안정을 찾고자 하였으나 오랜 시간 쌓인 대내외의 문제들로 인해 혼란한 상황 속에 있었고, 이때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 장군이 179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게 된다. 1799~1815까지 나폴레옹의 영웅적 생애가 펼쳐지는 시기이며, 그래서 통령정부시대와 제1 제정시대를 나폴레옹 시대라고 한다. 나폴레옹은 통령정부를 수립하면서 제1 통령이 되는데 후에 모든 권한을 갖는 종신통령에 이어 1804년 나폴레옹 1세라 칭하며 황제로 즉위한다.

 

2. 복식

1) 개요

 프랑스 절대왕정의 몰락은 남성 패션에 있어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으며 여성의 복식 변화보다 더 현저하였다. 이전 시대의 화려함과 장엄함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나폴레옹을 비롯한 상류층은 보수적이어서 칼라를 높이 세운 프록코트와 베스트, 꼭 끼는 퀼로트를 입었고, 혁명파는 헐렁한 판탈롱에 카르마뇰이라고 하는 시민복을 착용해서 귀족들의 복장과 구별되었다.

 여자 복식은 혁명 이후에도 얼마 동안은 귀족 스타일이었으나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고대 그리스·로마풍의 의복으로 변화했다. 이 시기에는 코르셋이나 후프의 속박에서 벗어나 간편함,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복식이 슈미즈 가운이다. 총재정부시대에 도입되었으며 얇은 소재를 사용해서 만들었고, 속옷을 입지 않아 신체의 곡선이 비쳐 보인 것이 특징이다.

 

2) 남자 복식

 (1) 코트

 19세기 기본 코트의 형태는 총 3가지로, 허리선에서 앞부분을 잘라낸 듯한 테일 코트, 앞판이 단까지 사선으로 약간 경사지게 벌어진 프록 코트, 그리고 판탈롱과 함께 조끼위에 착용한 카르마뇰이다. 카르마뇰은 18세기 말부터 서민들이 착용했으며,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기장에 넓은 칼라와 라펠이 겹쳐진 전체적으로 풍성한 실루엣이었다.

 코트의 칼라는 넓은 스탠딩 칼라나 롤칼라가 달린 것 등이 있었고, 소매는 좁고 긴 형태로 끝에 커프스가 달리거나 트임이 있고 두세 개의 단추가 달린 것이 있었다. 여밈은 싱글이나 더블로 되어있고, 몸에 잘 맞게 만들어졌다.

 

 (2) 조끼

 18세기에 입었던 조끼의 기장에서 허리선까지 짧아졌다. 칼라와 라펠모양, 여미는 방식이 다양해졌으며, 코트나 바지의 색이 어두운 반면에 조끼는 밝은색을 주로 이용했다. 

 

(3) 셔츠

 코트 안에 속옷으로 착용했던 의복이다. 평상시에는 넓은 칼라 폭의 단순한 형태의 셔츠를 입었으며, 앞 중심에 레이스나 프릴로 장식된 화려한 셔츠는 야회복 용도로 착용했다. 

 

(4) 바지

① 퀼로트  

 무릎 기장의 다리에 꼭 맞는 바지로,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상류층 남자들이 입었다. 혁명을 기점으로 하여 부르주아 계층이 착용하면서 지위를 나타냈고, 총재정부시대에는 귀족이 궁정복으로만 입었다. 일반 시민은 긴 바지인 판탈롱을 착용했다.

 

② 판탈롱 

 통이 여유 있는 직선형 바지로, 기장이 7부 정도에서 발목까지 오는 긴 바지였다. 오늘날의 바지와 같은 형태이다.

 

(5) 외투 

 이 시기에 입었던 외투는 크게 두 가지로, 르댕고트와 캐릭을 입었다. 케릭은 품이 넓고 케이프가 달린 외투로, 르댕고트의 일종이며 영국에서는 그레이트 코트라고 불렀다. 기장은 발목까지 내려왔으며 3~5개의 케이프가 달려 있다. 르댕고트는 겨울에 착용하는 방한용 외투이며,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 긴 기장이었으며 윗몸 부분이 꼭 맞는 형태였다. 

 

3) 여자 복식 

(1) 슈미즈 가운 

 신고전주의의 영향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에 유행하게 된 여자 복식이다. 초기에는 폭이 넓지 않은 긴 스커트에 하이웨이스트, 그리고 짧은 퍼프 소매 등 장식 없이 수수한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총재정부 시대 파리 여성들은 맨살에 슈미즈 가운을 입어서 신체의 곡선이 비쳐 보였다. 기장은 땅에 끌릴 정도로 길었으며 색상은 대부분 하얀색이었다. 스커트 밑단에 자수나 페이즐리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나폴레옹의 통치시기인 통령시대 이후에는 슈미즈 가운의 넥라인이 더 넓게 파였으며, 얇은 모슬린 소재를 사용하여 여성 신체의 곡선미가 더욱 드러나게 했다. 

 

(2) 엠파이어 드레스(empire dress) 

 초기의 그리스풍 슈미즈 가운에 긴 소매를 달고 비치지 않는 소재를 사용해서 만들어 보다 점잖은 느낌의 궁정용 예복이었다. 화려하고 긴 트레인과 비치지 않는 고급 직물을 사용했으며, 풀을 먹인 모슬린이나 레이스를 주름 잡아 두 세겹을 세워서 단 칼라인 콜레트 칼라가 달려서 화려한 형태였다. 1808년 나폴레옹 집권기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면서 여성 의복에도 호화스러움이 더해졌다. 이 시기에는 기장이 발목이 보일 정도로 짧아지고 스커트의 폭이 넓어지는 등 가운이 다양하게 변화했다.  

 

(3) 외투

① 스펜서재킷과 칸주

 스펜서재킷은 짧은 기장의 상의로 추위를 막기 위한 재킷이었다. 앞트임 형태에 길고 딱 맞는 소매가 달려 있다. 시간이 갈수록 기장이 점차 짧아졌으며 가장자리에 모피를 두르거나 테일러드 칼라 형식으로 만들기도 했다.  스펜서재킷과 비슷한 재킷으로 칸주(canezou)가 있는데, 스펜서재킷보다 기장이 길어 벨트를 허리에 매기도 했으며, 역시 추위를 막기 위한 용도로 착용했기 때문에 벨벳이나 두꺼운 모직물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② 르댕고트 

 남성용 르댕고트의 영향으로 생긴 여성용 외투이다. 로코코 시대 말기부터 착용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전반에 유행했던 것은 앞 중심의 중앙 부분부터 끝단까지 열리는 단순한 형태로 밴드로 둘러 입었다. 모피로 만든 방한용 르댕고트도 있었고, 기장은 발목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4) 속옷

① 슈미즈 

 18세기에 착용하던 것을 그대로 착용했다. 소재는 얇은 모슬린과 마직물이었다. 통자형의 헐렁한 실루엣이었으며 넥라인은 사각으로 파이고 모슬린으로 주름을 잡은 콜레트를 달았다. 19세기에는 엠파이어 드레스 안에 슈미즈와 코르셋을 입었다.

 

② 속바지 

 남성용 의상이 도입되면서부터 입기 시작한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왕정복고 시대에 보편화되었다. 19세기 초에 유럽에 전파되었고 1814년경에는 양말과 함께 형태가 다양화되었다. 1830년 이후에는 어린 소녀들의 복장에만 남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