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류학 - 현대패션과 서양복식문화사

중세 - (3) 중세 중기 복식(11~13세기)

by 루아맘amber 2023. 2. 12.

1. 시대적 배경

 11세기경 서유럽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안정화되자 동로마 제국의 후신인 비잔틴 제국의 문화를 원천으로 문화의 부흥에 주력하게 된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로마, 게르만, 초기 기독교적 요소가 융합된 중세 초기 문화에 비잔틴 문화까지 더해져 독특한 중세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시기의 서유럽은 폐쇄적이고 농업 의존적인 봉건 체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며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도시가 발달하고, 무역이 신장하고, 공업 기술이 발달했다. 또한 경제구조도 농업 위주에서 산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직물 산업도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농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여유가 생기자 외모를 가꾸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축적된 경제력은 이후에 의복이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자리 잡는 계기를 제공했다.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약 200년간 계속된 십자군 전쟁은 중세 중기 문화에 물질적·정신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 시기를 대변하는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을 성립시키는 데 일조하게 된다. 주로 교회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이 양식의 특징은 반원형 아치와 원주, 건물의 십자형 배열, 두꺼운 벽과 아치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 작아진 창문이다. 창을 내는 면적이 작아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넓어진 벽면에 인물상을 조각이나 부조, 벽화로 장식하게 된 것도 특징적이다.

 중세에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신체의 선을 가리는 소박한 스타일의 의복을 착용하였으나, 동방에서 수입한 

 아름답고 정교한 실크, 면직물, 그리고 직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복식이 화려해졌다. 화려한 의복이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수단으로 여겨 사람들은 신체를 아름답게 꾸미고자 했으며, 이러한 욕구는 점차 신체 선을 드러내는 복식 형태로 변화해 가도록 했다. 

 따라서 중세 중기에는 복식이 좀 더 신체에 맞는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시기에 복식은 「바이외 테피스트리(Bayeux tapestry)」라는 자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11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장면을 수놓은 이 작품은 당시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좋은 복식사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2. 복식

1) 개요

  중세 중기의 복식은 로마와 게르만적 요소, 그리고 기독교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중세 초기 복식에 비잔틴 복식문화가 융합되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동방의 실크, 면직물을 들여오면서 견과 마, 견과 모, 마와 모 등의 교직물을 생산하게 되자 달마티카와 튜닉은 부드럽게 몸에 잘 맞는 블리오(bliaud)로 발전하게 된다. 거친 모직물로 제작하였던 맨틀도 보다 얇고 부드러운 직물로 소재를 대체하였다. 

 중세 중기의 로마네스크 복식은 신체 선을 모두 의복으로 감추었던 비잔틴 시대와는 달리 몸에 잘 맞는 실루엣이며, 남녀의 복식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별에 따른 복식 차이가 가속화되는 시기이다. 복식의 일반적 형태는 언더 튜닉인 쉥즈(chainse) 위에 블리오를 입고 맨틀을 걸쳤으며 비잔틴의 영향으로 복식이 화려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2) 남녀 복식

 (1) 블리오(bliaud, bliaut)

  중류층 이상의 귀족들이 착용한 튜닉형 의복으로 11~12세기의 대표적인 남녀 의복이다. 블리오의 특징은 타이트한 상체, 깔때기처럼 넓게 퍼진 소매와 길고 풍성한 치마, 긴 허리끈을 길게 늘어뜨린 것이다. 인체의 곡선을 드러내기 위해 신축성이 있는 모와 견의 교직물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정교하게 주름을 잡아서 기능성을 살리기도 했다. 

 초기에는 몸통이 헐렁하고 소매통이 넓은 원피스 형태였는데, 12세기부터는 상체가 몸의 윤곽선이 드러날 정도로 붙었으며 하체 부분은 폭이 넓고 길어졌다. 몸통을 꼭 맞게 하기 위해  중심이나 옆을 끈을 이용해 X자로 묶기도 했다. 

 

 (2) 튜닉

 중류 계층 이상의 귀족들은 블리오를 입었던 반면,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튜닉(tunic)을 착용했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를 입었고 남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짧은 기장의 것을 입었다. 남녀 모두 벨트를 맸다.

 

(3) 쉥즈(chainse)

  언더 튜닉의 다른 명칭으로 마직물이나 얇은 모직물로 만들었으며 튜닉이나 블리오 안에 입었다. 기장은 발목까지 내려오고 폭과 소매통이 좁아서 몸에 끼는 듯한 실루엣이었다. 겉옷 안에 입었던 의복임에도 불구하고 금사나 은사로 수를 놓는 등 비교적 화려했으며 12세기에는 귀족들이 실크로 된 쉥즈를 착용하기도 했다.

 

(4) 꼬뜨 

 상체는 몸에 잘 맞고 스커트 부분은 넓고 길며 풍성하게 주름이 생기는 형태의 의복이다. 주로 얇은 모직물로 만들었으며 실크나 금사로 짠 직물도 사용했다. 블리오와의 차이점은 소매로, 소매통이 넓은 블리오에 비해 꼬뜨는 타이트 슬리브(tight sleeve) 또는 돌만 슬리브(dolman sleeve) 형태였다. 

 

(5) 코르사주(corsage)

 추위를 피하기 위해 착용한 몸이 꼭 끼고 앞이 트이지 않은 조끼형 의복이다. 블리오 위에 입었으며, 신체의 선을 드러내기 위해 등 뒤를 끈으로 조였다. 신축성을 위해 모와 견의 교직물을 두세 겹 겹쳐서 누빈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것은 금사나 은사 등으로 누비고 보석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6) 쉬르코(surcot)

  중세 중기의 가장 특징적인 의복으로 13세기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생겨났다. 쉬르코는 십자군들이 갑옷을 비와 먼지로부터 보호하고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갑옷 가리개로 착용한 타바드(tabard)에서 유래하였다. 남녀 모두 꼬뜨나 튜닉 위에 착용했는데, 소매 없이 양쪽 겨드랑이 밑 솔기를 합봉하지 않고 벨트로 고정하거나 겨드랑이 아래에서 끈이나 버클로 앞판과 뒤판을 연결하였다. 후기로 갈수록 장식이 추가되면서 더 화려해졌다.

 

(7) 맨틀(mantle)

 이 시기의 맨틀은 중세 초기의 형태와 크게 다른 점이 없으나, 블리오의 기장이 길어짐에 따라 맨틀로 길어졌으며 중기와 후기에는 비잔틴의 영향으로 장식이 화려해졌다.

 

(8) 바지

 중세의 바지는 브레(braies)라고 한다. 북방 민족들이 착용했던 것과 형태가 같고 일반인이나 귀족 남자들이 튜닉 밑에 착용하였고 마직물이나 모직물로 만들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