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어진 4~5세기 이후부터 동로마의 후신인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15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을 가리킨다.
1. 시대적 배경
동로마가 비잔틴 제국으로 발전해 갈 때 서로마 제국(현재의 서유럽에 위치)은 수많은 북방 민족들의 침입을 막아 내고 있었다. 특히 게르만족(갈리아족), 고트족, 훈족, 반달족, 골족, 앵글로·색슨 족 등이 척박한 북유럽에서 남하하면서 서유럽 제국은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남하한 북방 민족들은 서유럽의 여러 지역에 정착하여 각각 독립국가를 건설하면서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해 나갔다. 그중 가장 강력하였던 프랑크족은 갈리아 지방을 통일하여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그리하여 메로빙거 왕조(486~751)와 카롤링거 왕조(751~987)로 이어지는 중세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추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은 기독교로 개종 후 다른 게르만 국가보다 로마인과 잘 융합하였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2대 왕인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 742~814)는 800년에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에 올라 행정, 사법, 교육, 예술 등 발전의 기반을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 당시 교회가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정치, 경제적 활동을 펼쳐 유럽 전역을 지배할 수 있는 권위와 경제력을 갖게 되고 나아가 서유럽 문화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에 예술, 문학, 철학, 복식 등 문화 관련 분야는 가히 암시대라고 할 만큼 초라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세는 초기에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바탕 위에 게르만적 요소와 기독교적 요소가 융합되어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중기와 후기에는 십자군 원정으로 인하여 동방 즉, 비잔틴적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고딕 양식이 탄생하였으며 이는 복식과 예술 양식 등에 영향을 끼쳤다.
2. 복식
1) 개요
중세 초기에 척박한 북쪽 지역에서 로마로 남하한 게르만족을 대표로 하는 북방 민족들은 자신의 문화보다 우위에 있는 로마 문화에 융화되었고, 복식에서도 복합적인 모습을 보였다.
서유럽의 복식은 6세기 초까지 로마 복식의 영향이 지배적이었으나, 점차 기독교의 금욕주의적 요소, 게르만의 의복 구성을 결합하여 고대 복식과는 새로운 형태의 중세 복식으로 발전시켰다.
북방 민족들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자 몸에 잘 맞는 의복인 가죽 등으로 체형형 의복을 만들어 입었으며, 다리를 감싸는 바지를 만드는 등 입체적인 봉제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로마 복식은 커다란 옷감을 몸에 두르는 드레이퍼리형 의복을 입었으며, 겉에는 로마식 의복을 착용하고 안에는 자신들 고유의 체형형 의복을 입었다.
남자는 길이가 짧은 튜닉에 맨틀을 두르고 튜닉 안에 바지를 입었다. 여자는 초기엔 로마의 여성복인 스톨라와 팔라를 입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톨라 대신 튜닉을, 팔라대신 맨틀을 입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의 금욕주의적 윤리관의 영향으로 머리와 얼굴을 완전히 감쌌고 옷 길이도 땅에 끌릴 정도로 길어졌다. 여성의 옷 기장이 길어진 것과는 상반되게 남자의 튜닉은 짧아져 점차 의복에 성별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중기에 더욱 가속화되어 중세 후기에는 남녀 의복이 확연하게 구별되었다.
2) 복식
(1) 튜닉(tunic)
중세 초기 남녀 모두 착용한 T자형의 기본 의복이다. 여자는 발목까지 길게 입고 벨트를 매기도 했으며, 남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짧은 기장을 입었다.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 때의 남자 튜닉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장에 긴 소매가 달렸고 몸에 잘 맞는 형태였으며, 상류층에서는 6~8세기에 로마의 튜니카 팔마타를 착용했다.
카롤링거 왕조 때는 안에는 언더 튜닉, 겉에는 튜닉, 이렇게 두 벌의 튜닉을 겹쳐 입기도 했다. 언더 튜닉은 색상이나 형태가 단조로운 데 비해 겉에 입는 튜닉은 넥라인 등에 정교한 문양이나 여러 가지 색의 장식 선을 둘렀다.
9세기경에는 무릎이 보일 정도로 기장이 짧아지고 손목, 도력에 장식 선이 있는 남자 튜닉이 나타나는데, 이는 9~11세기에 걸쳐 중세 복식이 몸에 꼭 맞게 변화하는 단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상체와 손목 부분이 잘 맞고 스커트 부분이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가 여성복에도 나타났다.
(2) 맨틀(mantle)
외투 목적으로 두르는 망토의 총칭이며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척박하고 추운 환경에서 생활하던 북방 민족이 주로 입었던 파에눌라, 레노, 라세르나, 사굼이 로마에 전해져 중세에도 착용한 형태이며, 다른 하나는 고대 로마에서 착용하던 드레이퍼리형으로 팔루다멘툼, 팔라·팔루다멘툼이 있다.
여자들은 머리까지 팔라를 두르거나 맨틀을 중앙에서 고정핀으로 여며 입었는데, 원 형태의 맨틀인 쿠쿨루스(cuculus)는 후드처럼 머리를 감싸서 착용하였다. 맨틀에 수를 놓은 장식 선을 대거나 맨틀 전체에 화려하게 수를 놓기도 했다.
남자들은 맨틀을 주로 오른쪽 어깨 혹은 중앙에서 핀으로 고정하거나 두 장의 사각형 천을 앞뒤로 두르고 양어깨에서 핀으로 고정하여 착용했다. 맨틀은 추위나 비를 피하기 위한 의복이었기 때문에 두꺼운 모직물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팔라나 팔리움은 고정 핀, 피불라 없이 몸에 둘러 입었다.
(3) 달마티카(dalmatica)
초기에는 기독교인들이 착용한 소박한 형태의 의복이다. 기독교 정식 공인 이후에는 귀족 계급의 남자들이 실크에 화려하게 자수로 장식하여 착용했다.
(4) 바지
중세 초기의 남자는 튜닉 밑에 바지를 입었으며 그 위를 다른 색의 끈으로 묶기도 했다. 후에 긴 양말 형태인 호즈(쇼즈)를 착용했다.
3) 헤어스타일과 장신구
남자는 짧은 머리이거나 일반적으로 중간 혹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머리였다. 황제는 화려하게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을 착용했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내려뜨리거나 양옆으로 길게 땋아 내리는 소박한 스타일을 보였으나 8세기경부터는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도록 감추는 스타일이 나타났다. 터번을 쓰거나 사각형의 천으로 머리와 목을 감아서 자연스럽게 드레이프가 생기게 하거나, 사각형의 하얀색 마직물 또는 색이 있는 얇은 천으로 머리를 두르고 보석 장식이 있는 금속 밴드를 관처럼 써서 고정하기도 했다. 9세기부터는 원형의 베일을 쓰기도 했는데 베일을 고정하는 밴드 장식으로 사회적 지위를 구분할 수 있었다.
'의류학 - 현대패션과 서양복식문화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 - (4) 중세 후기 복식(14~15세기) (0) | 2023.02.14 |
---|---|
중세 - (3) 중세 중기 복식(11~13세기) (0) | 2023.02.12 |
중세 - (1) 비잔틴 복식 (0) | 2023.02.10 |
고대 - (6) 로마 복식 (0) | 2023.02.09 |
고대 - (5) 에트루리아 복식 (0) | 2023.0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