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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학 - 현대패션과 서양복식문화사

중세 - (1) 비잔틴 복식

by 루아맘amber 2023. 2. 10.

1. 시대적 배경

 A.D. 395년 로마 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379~395)가 사망하자, 두 아들이 제국을 물려받는데,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로마는 호노리우스(Honorius; 395~423 재위)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로마는 아카디우스(Arcadius) 황제가 통치하게 됨으로써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었다. 서로마가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여러 국가로 분리되는 동안 동로마는 옛 로마의 권위와 문화를 이어받아 비잔틴 문화를 번성시켰다. 그리하여 동로마는 4~5세기부터 1453년 오스만 튀르크족에게 멸망할 때까지 약 천 년 동안 서구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비잔틴이라는 명칭은 수도의 원래 지명인 비잔티움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로마는 상업적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지리 조건 덕분에 번창할 수 있었는데, 4~5세기부터 무역, 상업, 예술,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고루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동로마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은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 길목에 있 동서 문화의 가교 구을 했다. 아시아에서 건너온 다양한 물건들과 비잔틴의 문물들은 유럽의 궁정, 교회에 수출되었으며 십자군 전쟁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서유럽에도 전파되어 그들의 문화와 복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비잔틴 문화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 I; 527~565 재위)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통치 기간에 전성기를 누렸다. 비잔틴 예술의 기초가 다져졌으며, 기독교 미술과 건축술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유럽 법률의 이론적 근간이 되었던 「로마법」의 편찬을 지원하였으며, 소피아 성당 및 다양한 공공 건축물 건립을 아낌없이 지원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이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되는 데 이바지했다. 비잔틴 미술은 종교 미술로서, 내적인 종교적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형태보다는 색의 효과를 사용했고, 건축에서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색을 사용하였다. 비잔틴 문화는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적 전통과 기독교 사상, 동방의 특색이 융합하여 독자적인 양상을 띠며 발전하였고, 이는 11~12세기 유럽의 로마네스크 양식, 15~16세기의 르네상스 양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초기 기독교 복식의 형태(달마티카, 튜닉, 맨틀)는 커다란 십자가형 천으로 신체 곡선을 드러나지 않게 완전히 감싸는 것으로, 현세의 인간 육체에 대한 무관심과 초기 기독교의 금욕주의적 윤리관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남성도 튜닉이나 달마티카 안에 바지를 입어 신체 선을 가렸고 여성 복식은 화려했지만 비활동적이었으며 머리, 팔, 다리를 감추었다. 

 테오도라 황후가 552년경 중국에서 실크 생산 기술을 들여오기 전까지는 실크를 중국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수입하거나 메소포타미아를 통해 육로로 수입하였다. 길드가 생기고 나서는 직조 길드에서 교회용, 실내장식용, 의복용 실크를 생산했다. 실크는 외교적 목적으로 서양에 선물했기 때문에 곳곳의 군주 또는 주교의 성물함에서 비잔틴 직물이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전파된 비잔틴 직물은 비잔틴 복식의 유행을 확산시키면서 더 많은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비잔틴 문화는 6세기를 정점으로 그 세력이 기울기 시작하였다. 726년 황제 레오 3세(Leo III; 717~741 재위)가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 신, 성인 묘사가 된 성상 파괴를 명함으로써 황제와 교회가 분열되고 비잔틴 예술도 정체기를 맞게 된다. 이어 봉건제, 십자군 원정으로 비잔틴 제국은 흔들리게 되고 결국 1453년 멸망하게 된다.

 

2. 복식

1) 개요

 초기 비잔틴 복식은 로마 후기의 복식이나 중세 초기 서유럽의 복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팔루다멘툼, 달마티카, 튜닉이 대표적인 복식으로, 점차 다양한 색상의 직물, 문양, 술(fringe), 보석들로 화려하게 장식함으로써 비잔틴 복식의 특징을 완성해 갔다. 서유럽의 복식이 단순하고 소박한 게르만적인 양식으로 변모했지, 비잔틴 복식은 동방의 직물, 보석, 색, 문양 등을 사용하여 화려하고 동양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의복은 여전히 사회 계급과 지위를 드러냈으나, 로마 때와는 달리 복식에 대한 규제가 심하지 않아서 경제력만 된다면 직물과 장식의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따라서 부유층, 상류층은 화려한 의복을 착용할 수 있었다. 

 

2) 복식

 (1) 튜닉

  비잔틴의 일반인들의 기본 복식으로 로마의 튜니카에서 유래된 T자형 튜닉이다. 길이는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짧은 것에서 발목까지 오는 긴 것까지 다양했다. 로마 초기에는 계급에 따라 엄격하게 문양, 직물의 색, 클라비, 세그멘테의 넓이와 색을 규정하였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크게 왕족, 귀족, 평민 등으로 나눌 뿐 계급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았다. 만드는 방법은 달마티카와 비슷하지만, 튜닉은 벨트를 묶고 소매통이 좁으며 옷의 여유분이 적은 점 등에서 차이가 났다. 튜닉의 양옆은 활동하기 편하도록 슬릿이 있는 것도 많았으며, 추울 때는 튜닉 안에 소매통이 좁고 길이가 긴 속옷으로 언더 튜닉을 입기도 했다.

 

 (2) 달마티카 

  1세기경 초기 기독교인은 그리스도가 콜로비움(collobium)이라는 단순한 사각형의 튜닉을 입었다고 하여 콜로비움을 착용하였다. 이 콜로비움에 넓은 소매가 달려서 달마티카로 발전하였는데, 달마티카는 여유 있는 의복으로 벨트가 필요 없어서 계급과 성별을 감출 수 있으며 튜닉이나 토가보다 간편하여 후기에는 기독교도가 아닌 일반인도 널리 착용하였다. 

 초기에 결혼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클라비나 장식이 없는 수수한 달마티카를 입었으나 후에는 그 구분이 없어졌으며, 왕족이 입을 때는 종종 클라비와 불어 전면에 화려한 수를 놓기도 했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천을 반으로 접어서 양쪽 팔 밑을 잘라내고 가운데 머리가 들어갈 부분을 一자나 T자, U자 또는 원형으로 잘라 내어 만들었는데, 재단 상태에서 이 옷을 펼쳐보면 십자가 모양이라 종교적 감각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소재가 마직물이나 거친 울이었다가 기독교가 공인받고 남자들이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실크로도 만들었으며 클라비의 색과 장식이 다채로워졌다. 또한 옆선과 소매 선을 바이어스로 재단하여 몸에 잘 맞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재단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고대 복식에서 중세 복식으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3) 스톨라

  로마의 스톨라와 같은 복식으로, 주로 여성들이 그리스의 이오닉 키톤이나 도릭 키톤과 비슷한 의복을 언더 튜닉 위에 입거나 맨몸에 착용하였다. 옷 기장이 길고, 소매는 없는 것, 팔꿈치 길이인 것, 긴소매 등이 있었으며, 허리띠를 둘러 착용했다. 

 

(4) 바지

  라틴어 명칭은 브라코(braco)이며, 남자들이 튜닉 밑에 입었다. 길이가 긴 브라코를 입을 때는 다리에 긴 띠를 감거나 직사각형의 헝겊을 두르고 끈으로 X자로 묶어 고정했으며, 무릎까지 내려오는 짧은 브라코를 착용 시에는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길이의 긴 양말 형태의 호즈(혹은 쇼즈)를 입었다. 바지는 원래 추운 지방의 체형형 의복으로, 로마에서는 군인들이 북쪽 지역으로 원정 나갔을 때 방한을 위해 게르만인이 입는 바지를 착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로마는 따뜻한 지역이고 드레이퍼리형 의복을 입기 때문에 귀족들은 브라코를 야만인의 의복이라고 경멸하여 입지 않았고 주로 군인, 서민, 노예 계층에서 입었다. 고대 로마와 달리 비잔틴 시대에는 바지를 모든 계층에서 널리 착용했다. 주로 모직물을 사용하여 만들었고 화려한 문양의 직물이나 자수 직물로 만들기도 했다.

 

(5) 망토

① 팔루다멘툼(paludamentum)

 남녀 모두 착용했던 공식 의복이다. 사다리꼴이나 반원형의 모직물을 사용했고, 왼쪽 어깨는 완전히 감싼 뒤 오른쪽 어깨에서 피불라나 핀으로 고정했다. 기장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왕족은 팔루다멘툼 중간에 타블리온(tablion)이라는 사각형의 장식을 붙였는데, 보석과 자수로 다양한 문양이 표현되어 있었다. 금으로 짠 직물로 만든 타블리온은 황제와 황후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② 로룸(lorum)

 비잔틴 시대가 되자 로마의 토가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이를 두 겹이나 세 겹으로 접어 착용함으로써 크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나중에 겹친 부분을 제거하고 장식 띠의 형태로 변한 것이 로룸(lorum)이다. 이 시기에는 두꺼운 실크에 보석과 자수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뻣뻣한 띠처럼 만들었으며, 황제와 황후만이 착용했다.

 

③ 팔라·팔리움

 로마에서 전승된 드레이퍼리형 의복이며, 튜닉이나 달마티카 위에 착용하였으며, 상류층 여성들은 팔라 대신에 형태가 비슷한 숄을 어깨에 걸치기도 했다.

 

④ 파에눌라

 모직물, 가죽 등으로 만든 사제복이다. 원래 북방 민족의 복식이었으나 로마에 전해 일반 서민들이 착용하다가 비잔틴 시대에는 사제복으로 정착하였다. 옷감을 타원형으로 재단하여 그 가운데에 머리를 넣을 수 있는 구멍을 냈으며, 대부분 후드가 달려 있다. 길이는 허리에서 무릎 사이이며 기독교인들이 많이 입었으나, 노예, 군인 등도 착용했다. 활동성이 좋은 구조로 인해 여행자들도 즐겨 입었고 현재도 고산지대에서는 이와 같은 형태의 의복이 민속 복식의 형태로 잔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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