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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학 - 현대패션과 서양복식문화사

20세기 - (1) 1910년대 패션

by 루아맘amber 2023. 7. 18.

1. 시대적 배경
 19세기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를 프랑스어로 '좋은 시절'이라는 뜻인 '벨 에포크'(La Belle Epoque)'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비교적 평화로운 국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패션계에는 러시아 발레단의 파리 공연으로 동양풍이 유행하였으며, 미술계에서는 입체파 전시회가 열리는 등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1914년 8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러시아, 미국, 중동 및 아시아 국가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평화로운 시대의 막이 내리고 유럽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남자들의 참전으로 여성의 사회 활동이 크게 확대되고, 이에 따라 여권이 신장되면서 여성에게 많은 자유와 권리가 주어졌다. 영국은 1917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었으며, 1918년 이후 많은 나라에서 헌법으로 남녀동등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쟁에서 승리한 열강은 또다시 자본주의적 식민체제를 강화하였다. 프랑스는 패전한 독일을 무력화시키고 주변 국가들을 이용해서 유럽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 하였고, 영국도 이에 가세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빌미로 무기, 군수품, 식량 등을 유럽에 수출함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올리며 경제력을 키워 이후 모든 면에서 열강을 능가하는 경제적, 정치적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의 예술 사조는 1914년까지 유려한 곡선의 아르누보(Art-Nouveau) 양식이 대세였으나, 유려한 선 대신 기하학적인 형태로 전환됨에 따라 아르데코(Art-Deco) 양식이 싹을 틔웠다. 아르데코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데스틸(De stijl) 운동의 신조형주의와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의 기능주의의 자극을 받아 기능성과 단순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가속화되면서 직선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특성으로 내세우며 등장하였다. 
 아르데코는 장식 및 조형예술 분야에서 1908~1930년까지의 지배적인 예술 양식으로, 입체주의(Cubism), 야수주의(Fauvism), 미래주의(Futurism), 기능주의(Functionalism), 합리주의(Rationalism) 등에 미학적 토대를 두고 있다. 아르데코 양식의 특성은 입체파 표현 방식에서 보여주는 대상의 형태를 단순화한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하는 한편, 색채 면에서는 야수파에서 나타나는 원색 사용을 따르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사용되었던 에드워드(Edward) 시대의 엷은 파스텔 톤은 사라지고 빨간색, 코발트색, 오렌지색과 같은 원색의 강한 색조를 사용하였다.


2. 패션의 경향
 1) 의복 스타일
 1910년대의 패션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는 1910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8년부터 1920년으로 구분하는데, 짧은 시기이지만 다소 차이를 보이면서 변화, 발전한 시기였다. 1910년대 초반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고 스포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여성복은 기능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복식에 대한 개념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에 코르셋 폐지 시도가 있었으며, 1910~1913년에는 남성복과 유사한 테일러드슈트(tailored suit)가 여성적인 호블 스커트(hobble skirt)와 공존하며 인기를 끌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는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는 새로운 실루엣을 제시하며 패션에 변화를 시도하였다. 푸아레는 1908년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복식에서 영감을 얻은 하이웨이스트의 엠파이어 튜닉 드레스를 발표하였고, 1910년에는 호블 스커트를 선보임으로써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여성의 S자형 실루엣을 스트레이트 실루엣으로 변화시킨 혁명적인 드레스로 평가되었다. 호블 스커트는 상체에서 무릎까지는 여유가 있으나 발목 부분은 좁아져서 전체적인 실루엣이 연필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초기에는 활동하기 불편하였으나 나중에 앞뒤 중심선 또는 솔기에 슬릿(slit)을 주거나 주름을 넣어 불편을 해소함으로써 1910년부터 1914년까지 크게 유행했다. 
 호블 스커트에 이어 푸아레는 1913년 미너렛 스타일(minaret style)을 발표했다. 미너렛 스타일은 회교 사원의 탑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무릎까지 오는 튜닉의 헴 라인에 철사를 넣어 둥글게 퍼지도록 하였으며, 발목까지 오는 홀쭉하고 좁은 호블 스커트와 함께 착용하였다. 여기에 동양풍의 터번을 매치시켜 이국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1909년 파리에 선보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Pavlovich Dyagilev)의 러시아 발레 공연은 동양적이고 화려한 무대와 의상 디자인으로 푸아레로 하여금 오리엔탈리즘을 이끌어낸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푸아레의 의상에 동양풍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블루, 핑크, 녹색 등의 새로운 색채를 패션에 도입하였고, 브로케이드, 벨벳, 실크와 같이 화려한 소재에 자수를 놓거나 비치는 소재를 사용하여 튜닉 드레스, 하렘팬츠, 기모노 코트와 같은 동양풍의 디자인도 선보였다.
 푸아레와 같이 20세기 초 디자이너로 활약한 마리아노 포르투니(Mariano Fortuny)는 1909년 섬세한 주름이 특징인 튜뷸러 드레스인 델포스(Delphos) 드레스 발표를 시작으로 이후 40년 동안 무게감 있는 벨벳 소재의 중세풍 의상, 그리스의 키톤, 그리고 동양의 복식 요소를 활용한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외에 챙이 넓은 메리 위도 해트(merry widow hat)를 유행시킨 루실(Lucile ; Lucy Lady Duff-Gordon)은 허리를 조이지 않는 편안한 의상을 발표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초기의 패션은 전쟁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으나, 1915년부터는 점차 스커트의 폭이 넓어지면서 길이는 짧아졌다. 이후 2~3년 동안 치마 길이는 더 짧아졌고 테일러드슈트, 수수한 모자와 블라우스 등을 착용하는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의상이 일반적이었으나, 상당수의 중년 여성들은 여전히 이전 시대의 S자형 실루엣인 에드워드 스타일(Edwardian style)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여성들도 직간접적으로 전쟁의 영향을 받게 되자 장식이 배제된 활동적인 일상복을 착용하게 되었다. 
 전후 1919년의 패션은 혼란 상태로 전쟁 전의 에드워스 스타일과 전쟁 중에 착용했던 품이 넉넉하고 길이가 짧아진 편안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이 공존했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부유층 여성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스타일이 시도되면서 풍성한 스타일에서 타이트한 스타일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여성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과 사회적·경제적 변화로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위해 연령을 불문하고 더욱 단순하고 기능적인 평상복을 착용하게 되었다. 또한 1910년대 말에는 폭넓은 플레어스커트의 폭이 점차 줄어들어 스트레이트 라인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는 1920년대 튜뷸러 스타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2) 헤어스타일과 장신구

 1910년대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단발 혹은 어깨 길이의 웨이브가 진 머리를 풀거나 말아 올렸으며, 진보적 취향의 여성은 머리를 짧게 자르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1910년대 초기 몇 년 동안 루실에서 디자인한 메리 위도 해트라는 챙이 매우 넓은 모자가 유행했고, 1912년과 1913년에는 크라운이 높고 챙이 좁은 모자가 등장했다. 여기에 깃털, 리본, 과일, 꽃으로 장식한 터번과 챙이 달리지 않은 작은 모자도 함께 유행하였다. 당시의 여성들은 깃털 장식을 매우 선호하여 모자나 머리에 장식하였으며, 신발은 단순해진 의상에 맞추어 굽이 약간 있는 단순한 형태의 구두와 발목 혹은 종아리 길이의 부츠를 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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